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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 말기의 화강석 석탑으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백제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의 3원 가운데 서원의 금당 앞에 있는 탑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 거의 절반 정도만 남았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기도 합니다. 2009년 1월 해체수리 중에 초층 탑신 내부 심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사리장엄에는 금제사리호, 유리사리병, 청동합 6점, 은제관식 2점, 은제과대장식 2점, 금동덩이 3점, 금제 족집게 1점, 유리구슬 외 다수 유물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기해년명 탑지를 통해 당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석탑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탑이며 동시에 가장 큰 규모의 탑입니다.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 평가 받는 기념비적인 석탑입니다. 특히 석탑 내부 심초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통해 백제시대의 사리봉안 방식이나 탑 건립에 따른 의식, 발원자와 발원 동기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는 매우 큽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반쯤 무너진 미륵사지 서쪽 석탑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 해체하면서 2009년 1월 14일 첫 번째 중앙 심주석에서 석탑을 세울 당시 봉안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사리장엄구는 불교의 탑 안에 넣는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용기와 물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사리장엄구는 금제 사리호, 금제 사리봉영기, 청동합 등 여러 물건으로 구성된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지 서탑을 639년에 지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서 더욱 중요한 유물입니다. 이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9900여점의 유물 중 금제사리내호, 금제사리봉영기 등 9점이 2018년 보물 제199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가 2022년 12월 27일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유물들 가운데에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금제사리봉영기로 여기에 새겨진 193자의 글에는 미륵사를 세운 목적과 사람, 석탑을 세운 연대 등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 착한 인연을 심어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대들보가 되셨기에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습니다. 백제 왕후인 사택적덕의 딸이 기해년인 639년에 가람을 창건하여 국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유물들 가운데에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금제사리봉영기로 여기에 새겨진 193자의 글에는 미륵사를 세운 목적과 사람, 석탑을 세운 연대 등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 착한 인연을 심어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대들보가 되셨기에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습니다. 백제 왕후인 사택적덕의 딸이 기해년인 639년에 가람을 창건하여 국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