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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과 공주

by 진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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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Panel 1
웅진과 공주
백제의 부흥을 이끈 도읍지
by 진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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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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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백제 웅진도읍기(475~538년)의 왕성이다.
개로왕의 전사로 국운이 크게 기운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다.
웅진이 새 도읍지가 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점이 작용했으리라 추정된다.

1.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2. 근처에 지지세력이 있었던 점
3.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가는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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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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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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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제24대 왕(재위 479∼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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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5대 국왕 (재위 50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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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후 한동안 귀족의 세가 강해져 왕이 짧게 재위하고 시해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를 끊은 것은 무령왕의 동생 동성왕이다. 동성왕은 웅진교를 건설하고 임류각을 세우는 등 웅진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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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이 의문의 죽음을 맞은 후, 무령왕이 제 25대 왕으로 등극한다.
무령왕의 본래 이름은 '사마'로, 무령왕의 부모가 왜로 가던 중 섬에서 태어나 붙여진 이름이다.
무령왕은 왜와 중국의 남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는 무령왕릉의 양식이 중국의 양식임을 보아 알 수 있다.
무령왕은 여러 번 고구려를 격파하여 '영동대장군'이라는 칭호를 중국으로부터 하사 받는다.
대통사지 당간지주
현재 복원된 대통교
웅진교 혹은 대통교
동성왕이 건설하였다는 웅진교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어떤 강을 잇는 다리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본래 금강을 잇는 다리라고 생각했으나, 강 북쪽에는 거의 백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제민천을 잇는 다리라는 설도 있다.
웅진기 공산성이 있어 번성한 동쪽과 서쪽의 균형을 맞추고, 서쪽에 있는 고마나루를 사용하기 위해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사지 당간지주 앞에 있는 대통교가 과거 웅진교로 유력하게 생각되고 있다.
임류각
임류각은 동성왕이 되찾은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왕궁 내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전에 웅진의 왕궁은 고구려가 그러했듯이 평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공산성 안에서 임류각 터가 발견되면서 왕궁 또한 공산성 내에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임류각은 93년에 복원되어 현재 멋진 위용을 자랑한다.
추정 왕궁지
공산성 내에 왕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왕궁 옆에 지었다고 기록된 임류각 터의 발견
2. 공산성 내의 많은 기와 출토 등 대형 건물지 유적 확인
3. 공주 시내에 다른 대형 건물지 터가 발견되지 않음
4. 무령왕릉 지석이 공산성을 기준으로 하여 작성됨
5. 왕궁의 홍수피해 사실이 기록되지 않음

현재 쌍수정 앞 공터가 왕궁지로 추정된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주인이 알려진 얼마 되지 않는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합장으로, 무령왕과 그 왕비가 합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의 특이한 점은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령왕릉은 건업인이 제작했다고 쓰인 벽돌이 출토되는 등, 남조의 양나라의 양식을 따른 무덤이다.
본래 백제가 쓰지 않았던 관대를 사용했고, 연화문과 오수전문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이는 왕릉군의 다른 횡혈식 석실분 혹은 석실묘와도 구분된다.

무령왕릉은 왕릉군의 다른 무덤과 구분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1. ㄱ자형 연도를 사용한 1~4호분과 달리 중앙연도를 사용했다.
2. 궁륭상인 1~4호분과 달리 터널식 천정을 사용했다.
3. 석재를 깎아 무덤을 만든 1~4호분과 달리 벽돌을 사용했다.

이는 중국 남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후 도읍지인 사비기의 고분에도 이어진다. 백제는 사비기에 북방문화에서 벗어나 완전히 동아시아 문화에 편입된다. 웅진기는 이런 남방문화의 싹이 튼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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